한글 28자 24자와 40자 구분 기준

한글 28자는 창제 당시 자음 17자와 모음 11자를 합한 수입니다. 당신이 학습 자료에서 24자와 40자를 보고 어느 숫자가 맞는지 혼란스러웠다면, 먼저 무엇을 세었는지 구분하면 됩니다. 현대 기본 자모는 24자이고, 학습용 40자는 쌍자음과 결합 모음까지 포함한 수입니다.
글자 수를 구분하면 보이는 창제 원리
창제 당시의 구성은 1446년 『훈민정음』 해례본을 기준으로 합니다. 초성은 음절의 첫소리, 중성은 가운데 모음이며, 받침인 종성에는 초성 글자를 다시 쓰도록 했습니다. 이 구조를 알면 음절마다 별도 글자를 외우는 체계로 오해하지 않고, 자모를 모아 쓰는 방식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자음은 발음 기관이나 발음할 때의 모습을 본뜨고, 기본 글자에 획을 더하는 원리로 설명합니다. 모음은 하늘·땅·사람을 상징하는 ㆍ·ㅡ·ㅣ를 바탕으로 구성했습니다. 다만 당시의 철학적 설명과 현대 음성학의 설명은 구별해야 합니다.
현대 기본 자모 24자는 자음 14자와 모음 10자입니다. 학습용 40자는 여기에 결합 글자 16자를 더한 범위이므로, 두 숫자가 서로 충돌하는 것은 아닙니다. 교재의 숫자만 비교하기보다 포함된 글자 목록을 확인하는 편이 정확합니다.
훈민정음 28자의 구성, 글자 원리, 사라진 글자, 자모 수 변화와 세종·학자의 역할을 정리한 인포그래픽
훈민정음의 구성과 기록을 확인하는 곳
인조이스의 원문 기사는 창제 당시의 글자 목록, 자음의 기본자와 관련 글자, 28자·24자·40자의 구성을 표로 나란히 보여 줍니다. 숫자의 차이를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실록과 해례본, 국립국어원 규정을 확인할 경로도 제시하므로, 학습 자료나 설명문에 쓸 근거를 찾을 때 도움이 됩니다.
빠진 네 글자와 남아 있는 소리
현대 기본 자모에서 빠진 글자는 반치음 ㅿ, 옛이응 ㆁ, 여린히읗 ㆆ, 아래아 ㆍ입니다. 발음과 표기 관습이 변한 결과이지만, 네 글자가 모두 같은 과정을 거친 것은 아닙니다.
반치음은 나타내던 소리가 변하면서 표기에서도 사라졌고, 여린히읗은 한자음 표기 등에서 제한적으로 쓰이다가 사용이 줄었습니다. 아래아는 다른 모음과 합쳐지는 등의 발음 변화와 표기 정리를 거쳤습니다.
옛이응은 글자 모양과 소리를 따로 보아야 하는 사례입니다. 현대의 ‘강’ 받침에는 옛이응이 나타내던 소리가 남아 있으며, 지금은 ㅇ으로 적습니다. 따라서 네 글자가 빠졌다는 사실을 네 소리가 모두 사라졌다는 뜻으로 받아들이면 부정확합니다.
학습 자료를 비교할 때 쓸 확인 순서
당신이 서로 다른 교재의 설명을 맞춰 보고 있다면, 다음 순서로 점검할 수 있습니다. 숫자와 소리, 표기를 나누어 확인하면 어느 부분에서 설명이 달라졌는지 짚기 수월합니다.
- 28자라는 설명에는 창제 당시 자음 17자와 모음 11자를 세었다는 기준이 있는지 확인합니다.
- 40자라는 설명에는 기본 24자 외에 쌍자음과 결합 모음을 포함했는지 확인합니다.
- 사라진 글자를 설명할 때는 글자 모양의 변화와 소리의 변화를 구분했는지 확인합니다.
예를 들어 40자를 소개한 학습표를 보고 기본 자모 규정이 바뀌었다고 해석할 필요는 없습니다. 결합 글자까지 학습 범위에 넣은 것인지 먼저 대조하면 됩니다.
조선 시대 옷을 입은 노인이 글씨가 보이지 않는 편지를 읽고 있으며, 편지와 집 기호가 화살표로 이어져 있다.
처음 배우는 경우와 옛 문헌을 읽는 경우
한국어를 처음 배우는 단계라면 자모를 익히는 일과 모아쓰기를 익히는 일을 먼저 구분해 배울 수 있습니다. 글자를 읽는 능력과 문장의 뜻을 이해하는 능력은 별개이므로, 어휘와 문법을 따로 배우고 정확한 발음을 위해 받침과 소리 변화도 익혀야 합니다. 학습 시간은 모국어와 학습 조건에 따라 달라집니다.
옛 문헌을 옮기거나 검색하는 경우에는 실제 자모를 확인하는 일이 먼저입니다. 반치음 ㅿ을 비슷하게 보이는 삼각형 △로 바꾸면 문자 정보가 달라집니다. 당신이 옛 글자를 정확히 기록하려는 경우라면 모양이 비슷한 기호로 대신하지 않도록 확인하세요.
만든 사람과 이름에 관한 궁금증
세종이 직접 만들었다는 기록은 어디에 있습니까?
1443년 음력 12월의 『세종실록』 기사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임금이 직접 언문 28자를 만들었다는 기록이 세종의 직접 창제를 설명하는 근거입니다.
한글이라는 이름도 창제 때부터 썼습니까?
아닙니다. 창제 당시 이름은 훈민정음이었으며, 한글이라는 명칭은 근대에 주시경과 관련 학자들의 활동을 통해 퍼졌습니다. 국립한글박물관은 1913년 한글모 활동을 명칭 확산과 연결합니다.
지금 보고 있는 교재의 자모 수를 국립국어원 한글 맞춤법 제4항의 기본 자모 목록과 대조해 보세요. 인조이스의 원문 기사에 정리된 비교표와 규정 확인 경로를 함께 활용할 수 있습니다.
이 글은 인조이스(injoys.com)가 운영하는 채널의 도움을 받아 작성했습니다. 원문과 출처는 위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댓글
댓글 쓰기